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세조 초기의 권력 투쟁 속에서 벌어진 단종의 비극을 배경으로 한다. 세조의 핵심 책사였던 한명회는 새 왕조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단종을 상왕으로 만든 뒤 결국 제거하려는 정치적 계략을 실행한다.
한편 산골의 한 가난한 마을에서는 마을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다른 길을 모색한다. 촌장은 인근 노루골처럼 귀한 양반을 유배지로 모셔 오면 그 영향력과 덕을 입어 마을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관아에 찾아가 자신들의 마을을 유배지로 써 달라고 청한다.
그 자리에 있던 한명회는 촌장을 보며 말한다.
“감당할 수 있겠느냐. 내가 상을 들고 올지, 칼을 들고 올지는 너에게 달렸다.”
결국 그 마을로 오게 된 인물은 평범한 양반이 아니라 폐위된 왕 단종이었다.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유배되고, 마을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지내게 된다. 그러나 단종의 삼촌인 금성대군이 다시 왕으로 세우기 위해 반란을 시도하고,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나며 비극이 이어진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스승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도울 수 있어도,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도울 수 없다. 아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는 윗사람이 아니다.”
단종은 왕이었다. 왕을 구할 수 있는 힘은 결국 그보다 더 큰 권력이나 더 높은 단계에서만 나올 수 있다. 금성대군이나 촌장, 그리고 백성들은 모두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있어도 권력의 흐름을 뒤집을 힘은 없다.
그들이 보고 듣고 판단하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 한명회의 정치적 계산과 같은 큰 권력의 흐름은 애초에 파악하기 어렵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행동하다가 거대한 권력의 흐름 속에 휩쓸리게 된다.
이 점에서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명나라의 도움을 기대하며 북쪽으로 피난했던 일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미 전쟁이 시작된 뒤라면 왕을 구할 수 있는 힘은 국내의 아래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외부의 힘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사건이 이미 터진 뒤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미 상황이 벌어진 뒤라면 아래에서 위를 구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먼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실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위에서 동아줄이 내려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동아줄이 내려오지 않는다면, 거기서 끝나는 것이다. 상대가 나쁘거나 무기력해서가 아니라 한단 뛰어넘을 실력이 없어 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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