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잘난 인간도 내장을 찢고 뼈를 꺾는 고통 앞에 무릎을 꿇는다. 외로움과 상실, 끝없는 허무 앞에서 정신이 무너진다. 그걸 이겨내기 위해 도와줄 존재를 찾고 신을 부르며 기도하고 애걸하기도 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이성적 존재, 가치와 이념을 세울 수 있는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고통 앞에서는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듯하다. 고통과 아픔은 불행이나 벌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통제하는 직접적인 수단이다.
굶주림, 질병, 노쇠, 상실 같은 고통은 인간을 강제로 멈추게 만든다. 먹지 말아야할 것을 반복적으로 먹고, 하지말아야 할 행동을 반복적으로 한 인간은 질병에 시달리고, 사고에 꺾여서 제발로 병원에 찾아가야 한다. 또는 가까운 이들을 잃고 상실감에 울부짖거나 외로움에 사무치는 고통에 다다른다.
자연은 설득하지 않는다. 이해를 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복종을 강요한다. 고통은 인간을 낮추고, 자연의 질서에 굴복하게 만드는 장치다. 이 점에서 고통은 도덕적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자각하게 하는 구조적 현실이다.
자연의 방식은 단순하다. 질서를 벗어난 존재는 고통을 통해 길들여지고, 끝까지 통제되지 않는 존재는 제거된다. 여기에는 선악도, 정의도 없다. 자연이 잔인해서가 아니라, 물리화학적 에너지 질서가 작동한 결과일 뿐이다. 인간이 보기에 잔혹해 보일 수 있지만, 자연에게는 그저 정상적인 작동이다.
“아무리 날뛰어 봐야 손오공은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말은 이 구조를 정확히 보여준다. 초능력 재주꾼 손오공은 힘과 기술, 반항의 영역에 있지만, 부처는 규칙과 한계를 표상하는 존재다. 차원이 다르다. 인간이 아무리 문명을 쌓고 기술을 발전시켜도 자연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사상과 제도로 자연을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한다. 기술로 생로병사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남는 것은 늘 몸이고, 시간이고, 결국 죽음이다.
고통은 자연의 질서를 벗어날 때 인체 시스템이 스스로에게 주는 경고에 가깝다. 자연의 제거작용이 작동하기 전에 인간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않고, 자연 질서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고통이 수행하는 역할이라 생각한다.
고통 앞에 멈추라. 그리고 돌아보라.
너무 멀리 가기 전에. 작은 것이라도 더 커지기 전에.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자에게는 작더라도 단 열매가 주어진다. 그리고 그 단 열매로 힘을 되찾으면 또 다음 순간을 살아갈 즐거움도 오니까.
길지 않은 인생. 개념으로 억지를 쓰면서 고통만 안고 살 필요가 있을까..
'사람과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성공 다음은 무엇? (0) | 2026.02.13 |
|---|---|
| 왕이 원한 사위는 영웅이 아니었다 (0) | 2026.01.31 |
| 조선 말기 고종의 실패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 (0) | 2026.01.24 |
| 자살 없는 사회를 만듭시다! (1) | 2026.01.18 |
| 우유 유청단백질 알레르기와 유당불내증 (0) | 2026.01.03 |